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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여징 작성일 2023-03-11
제목 편식이 심했던 아이,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편식을 고치다 파일
내용 어린 시절, 저는 채소를 멀리하고 고기에만 집착하며 제멋대로 편식하던 응석받이였습니다. 태어날 당시 체중이 심각하게 부족했던 미숙아로, 온 집안의 걱정을 받으며 마음껏 고집부리고 제 좋을 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가정환경이, 식습관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가뜩이나 마른 몸에 입까지 짧아, 그나마 잘 받아먹는 고기라도 먹여주지 않으면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부모님은 일단 저의 회복이 우선이라는 근거로 편식을 용인하셨고, 그 후로 저는 몰라보게 살이 붙어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큼직한 덩치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뼈가 드러나게 말랐던 예전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라고 부모님은 좋아하셨지만, 영양 불균형에 따른 비정상적인 성장이 이뤄진 탓에, 건강하지 않기로는 예전 미숙아 시절과 별다를 바 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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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편식 습관을 고치려고 해도, 자극적이고 기름진 맛에 길들어 쉽게 바뀌지 못했던 저는, 특단의 조치로 방학 때 시골 외할머니댁에 맡겨져, 손수 만들어주신 음식을 매 끼니 먹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몰래 숨겨온 과자나 간식을 몰래 꺼내 먹으며 버틸 생각이었지만, 그나마도 얼마 가지 못했고, 엄하고 과묵하신 성격의 할아버지와 함께 매일 일찍부터 밭에 나가 일을 돕다 보면, 도저히 음식을 가리며 거부할 만한 형편이 못 됐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제가 서울에 있을 때는 그렇게 기를 쓰며 거부하던 나물이나 김치 같은 채소 반찬에 조금씩 입맛을 길들이기 시작하자, 저는 어느새 편식하던 것도 잊고 할머니의 손맛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는 배고프지 않아도 ‘그저 맛있는 것을 새로 먹기 위해’ 위에 꾸역꾸역 음식을 채워 넣었던 반면, 외할머니댁에서는 항상 충분한 노동과 식사를 병행하며, ‘배고파지고 나서야 겨우 식사가 가능해지는’ 절실한 허기를 항상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